무라카미 하루키의 시선에서 본 달리기의 의미와 러닝으로 읽는 작가 이야기를 담은 러닝 에세이 소개

무라카미 하루키의 러닝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순한 취미 기록을 넘어, 작가가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자신의 정신과 신체를 어떻게 유지해 왔는지를 깊은 시선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하루키는 달리기를 단순한 운동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그는 달리기를 ‘삶의 방식’, ‘작가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 조건’, 그리고 ‘자신과 평생 대화를 이어가기 위한 루틴’이라 말한다. 이 책은 그가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달리기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달리기를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를 담담한 문체로 풀어낸 자전적 에세이다. 아래에서는 러닝, 작가적 삶, 그리고 에세이 전체가 전달하는 통찰이라는 세 측면에서 작품의 흐름을 더욱 깊이 있게 분석한다.
러닝으로 읽는 하루키의 이야기
하루키가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점은 소설가로 전업한 이후였다. 글을 쓰는 일은 외형적으로는 조용하고 정적인 작업처럼 보이지만, 그는 장편소설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체력과 강인한 멘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하루 5~6시간씩 책상 앞에서 작업하기 위해 몸을 강철처럼 단련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마침내 달리기를 선택한다. 달리기는 장비가 필요 없고, 어디서든 할 수 있으며, 스스로의 리듬을 정확하게 느낄 수 있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책에서 하루키는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일종의 자기관리이자 정신을 맑히는 의식”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매일 꾸준히 달리며 체력뿐 아니라 생각의 흐름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 달리다 보면 여러 복잡한 문제가 자연스럽게 정리되며,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감정이나 생각의 잔여물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는 명상과 비슷한 효과를 만들어 내고, 장편소설의 서사를 정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달리기는 단순한 신체 활동을 넘어 내면의 소음을 정리하는 일종의 반복 의식으로 작용한다.
또한 그는 달리기를 하면서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한계와 고통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기록한다. 한 여름의 혹독한 훈련, 무릎 통증,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의 고독감, 그리고 기록이 오르지 않을 때 찾아오는 좌절감 등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하루키는 “결국 달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완주가 아니라 꾸준함”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매일 자신에게 작은 약속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삶의 근육을 강화하는 진짜 과정이라고 말하며, 독자에게도 같은 메시지를 남긴다.
그는 몇 번의 마라톤과 트라이애슬론 도전을 통해 인간의 한계가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체험한다. 특히 보스턴 마라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는 나이, 체력, 기후 등 외적 조건이 결코 핑계가 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목표는 ‘더 빨리’가 아니라 ‘더 꾸준히’라는 가치를 확인시키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단지 경기 기록의 향상뿐 아니라, 일상에서의 태도와 삶의 방향을 재정비하는 계기가 된다.
작가의 시선으로 본 달리기의 의미
하루키가 달리기를 통해 가장 크게 얻은 것은 ‘작가로서의 리듬’이다. 그는 소설가라는 직업을 평범한 예술가적 감성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소설가를 “장거리 선수와 같은 직업”이라 말한다. 단거리 스프린트처럼 단번에 몰아치는 것이 아니라, 매일같이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끝없는 노력을 반복해야만 작품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는 글쓰기와 달리기 사이의 유사성을 여러 번 강조한다. 둘 다 ‘자기와의 싸움’이며, ‘자발적 고독’을 요구하며, 결과보다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이 변화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하루키는 한 권의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수백 번의 작은 고통을 체험해야 하고, 달리기도 한 번의 레이스를 위해 반복된 훈련을 거쳐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재능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창작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지구력과 지속력이 재능을 보완한다고 주장한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지속 가능한 루틴이다. 하루키의 하루는 규칙적이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점심 이후 정해진 거리와 속도로 달린다. 이 루틴이 반복되며 몸과 정신은 안정적인 리듬을 가지게 되고, 그 결과 소설의 호흡도 일정한 흐름을 유지하게 된다. 그는 이러한 리듬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술을 절제하고, 수면을 철저히 관리하며, 식습관까지 관리한다. 단순히 글을 잘 쓰기 위한 노력이라기보다, ‘작가라는 직업을 평생 지속하기 위한 전략’에 가깝다.
하루키는 또한 창작 과정에서 나타나는 침체와 불안에 대해 달리기가 제공하는 해결책을 설명한다. 글이 막혔을 때, 달리기는 생각을 물리적으로 분산시키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문제를 처리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달리기 후 돌아와 글을 쓰면 의외로 난관이 풀리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했다는 그의 사례는 많은 창작자에게 공감을 준다. 그는 재능의 한계를 반복적 훈련으로 보완하고, 달리기를 통해 길러진 정신적 강인함이 결국 작품의 완성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에세이에서 드러나는 삶의 통찰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단순한 러닝 기록을 넘어서 독자를 사로잡는 이유는, 이 책이 ‘삶의 방식’을 질문하기 때문이다. 그는 나이를 먹어도 달리는 이유, 기록이 떨어져도 계속 운동을 유지하는 이유, 그리고 때때로 완주하지 못하는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진솔하게 말한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감정의 결은 매우 인간적이며,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준다.
특히 나이 들어 찾아오는 신체적 변화에 대한 태도가 인상적이다. 하루키는 예전보다 빠르게 뛸 수 없음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지금의 속도는 현재의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페이스라는 것이다. 그는 “달리기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내가 나인 채로 꾸준히 가는 것’이다”라고 반복해 말한다. 이는 인생의 속도와 방향을 받아들이는 삶의 철학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달리기를 통해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흐르는지를 세밀하게 분석한다. 고통은 어떻게 극복되는지, 목표가 있는 삶이 왜 필요한지, 타인의 시선보다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양한 달리기 순간을 통해 설명한다. 특히 트라이애슬론 도전 이후 느낀 불안, 긴장, 성취감 등 복합적인 감정들을 기록한 부분은, 러닝 에세이를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에세이로 읽힌다.
에세이 곳곳에는 일상적이고 사소한 관찰들이 배어 있다. 거리의 풍경, 달리는 동안 마주친 사람들, 계절의 기운, 훈련 중 떠오른 과거의 기억들—이 모든 조각들이 모여 하루키의 인생 풍경을 만든다. 그는 이러한 사소한 관찰을 통해 ‘지속적인 자기관리’가 어떻게 삶의 질을 결정하는지 보여준다. 이는 단지 운동을 잘하기 위한 정보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스스로를 돌보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 통찰을 제공한다.
에세이 말미에 이르면 하루키는 ‘달리기는 결국 나를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 보호란 현실에서 도망치는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를 단단히 지탱하는 기초 체력과 마음의 근력을 길러 주는 의미다. 달리기를 통해 그는 외부의 혼란을 이겨낼 수 있었고, 작가로서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러한 통찰은 달리기를 하지 않는 독자에게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즉, 중요한 것은 어떤 활동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활동을 통해 꾸준히 자신을 돌보는 ‘방식’을 만드는 것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순한 운동 에세이가 아니다. 이 책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떤 속도로 가야 하는가’, ‘어떤 태도로 나이 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인생 철학을 담고 있는 깊은 고백서이다. 하루키는 달리기를 통해 자신이 작가로서, 개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며, 독자에게도 자신의 삶에서 지속 가능한 루틴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달리기의 리듬은 그에게 있어 창작의 기반이자 삶을 지탱하는 근간이며, 이 메시지는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충분히 와닿는 성찰을 제공한다.